건강정책웹진 5호(12.4)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의료기관 평가 인증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국민 여론과 시민 사회 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의료 민영화 정책의 추진 속도와 깊이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의료기관의 과도한 영리 행위를 규제하고 환자 중심의 의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시행하던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의료기관 평가 인증 제도 도입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부는 지난 9월 의료기관 평가 인증 제도 도입을 위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2010년 7월까지 의료기관 평가 인증제 도입 방안, 의료기관 평가 인증 전담 기구 설립 방안, 의료기관 대상 평가 통합 방안, 의료기관 평가 및 인증 결과 활용 및 공표 방안 등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복지부 방침은 그동안 복지부가 주관하던 의료기관 평가 제도를 민간 중심의 자율 평가 방식으로 전환하여 추진하는 것으로 추진 과정, 위원회 구성과 운영, 예산 집행 등 모든 면에서 비정상적이며 상식을 벗어난 정책 집행을 보여주고 있다.
의료기관 평가 제도 전면 수정한 복지부
의료기관 평가 제도는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의료기관의 서비스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부의 중요한 정책 과제이다. 복지부는 2002년에 의료법을 개정하여 의료기관 평가 제도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후 2004년부터 2008년까지 437개 의료기관에 대한 평가를 시행하였다. 그동안 의료기관 평가를 시행하면서 의료기관 입장에서나 의료 이용자 입장에서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적지 않은 병원 환경 개선이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간 중요하게 지적되었던 일시적인 평가와 전담 평가 인력 부재의 문제, 병원 측의 과잉 반응으로 인한 평가의 객관성 문제,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문제 등을 해결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은 복지부의 책임이다. 민간 자율 평가로 전환한다고 해결될 일은 결코 아니다.
그동안 병원협회는 정부가 주관하는 평가 제도를 병원협회가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하여 왔다. 시민 단체, 환자 단체, 병원 노동자들 대표하는 노동조합은 정부 책임을 강조하며 반대하였고 지금까지 정부 책임 하에 정부 산하 기관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시행해 왔다.
복지부는 올해 5월 의료기관 평가 제도 개선 방안 공청회를 통해 기존 평가 제도를 국제 수준에 맞게 끌어올리고 국제 인증 기준(ISQua standards)에 부합하도록 개선하는 방향을 확정하였다. 또한 복지부는 평가 제도의 취약점이었던 상임 평가 위원 등 인력 확충 계획을 세우고 추경 예산의 편성을 요구하였고 국회는 논란 끝에 추경을 배정한 바 있다.
그런데 이후 어떠한 논의나 의견 수렴 과정 절차 없이 평가 제도의 내용과 방식을 전환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며, 민간 자율 평가라는 미명 아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 되는 것이다.
독점적 구성과 방만한 운영으로 점철된 추진위원회
복지부는 추진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관해 관련 이해 당사자가 참여하고 논의를 통해 평가 제도를 마련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추진위원회는 의료기관 평가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심의․의결 기구이며, 산하에 구성된 추진단은 운영위원회 및 5개 분과위원회로 구성하여 위원회 심의를 위한 사전 실무 작업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 추진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민영화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의료 시장주의자들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추진위원장이 위원회 산하기구인 추진단의 단장과 운영위원회의 위원장까지 겸임하고 있으며, 복지부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 2인의 부단장사이에 이견 사항은 단장이 결정하도록 하고, 분과위원장 역시 위원장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등 사실상 위원장이 추진위 대부분의 의사 결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독점적 구조이다. 이렇게 일부 세력에 의해 독점적으로 구성 운영되는 조직에서 이해 당사자의 참여와 민주적인 논의 과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추진위원회의 예산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복지부는 올해 추경에서 확보된 의료기관 평가 인증제 도입 및 국제 인증 추진 예산 30억 원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예산은 애초에 의료기관 평가 상근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예산 항목이었는데 복지부가 추진위원회 운영 예산으로 집행하는 것은 국회의 예산 심의 권한에 대한 침해 행위라 할 수 있다. 추진위원회 예산 운영에 대해 추진위원장이 복지부와 협의하여 운영하며 예산 집행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담당하도록 한 것은 모든 권한을 민간 기구에 넘겨주고 그동안 의료기관 평가 사업을 수행해 온 보건산업진흥원을 허수아비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복지부가 추진하는 의료기관 평가 인증제 추진 사업은 제도 추진 과정, 추진위원회 구성과 운영 방식, 예산 편성과 집행 등 모든 면에서 비정상적이며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복지부는 의료기관 평가 제도를 이해 당사자들과 전문가와 시민 사회의 참여를 보장하고 민주적인 운영과 절차를 밟는 상식적인 정책 추진 방향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자율 평가를 운영하던 외국의 경우에도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이다. 대부분 민간 의료기관들이 수익 추구에 나서고 있으며 환자, 이용자 중심의 의료 환경이 취약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자율 평가보다는 정부의 책임 있는 평가가 더욱 요구되고 있다. 일방적이고 졸속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은 국민에게 신뢰를 받기 어렵고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